Jae Hwan Lim [성인부]
2014년 4월 16일은 내가 경기도 안산시를 떠나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을 시작한 지 꼭 7개월이 되던 날이었다. 평생을 안산 단원구 고잔동에 살며 안산에 대한 뉴스를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나는 당일 YTN 뉴스에서 '안산'이라는 단어를 처음 마주했다. 2살 차이 나는 단원 고등학교 친구들이 파란색 물속으로 사라지듯 가버린 그 날 나도 함께 사라졌다. 세상이 모두 멈춘 듯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모두 '구조' 되었다던 친구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실종'과 '사망'이라는 단어로 얼룩지며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발디딘 임재환의 한 부분도 같이 실종되었다.
April 16th, 2014, was the seventh month since I left Ansan to study abroad in Chicago. Since I lived in Danwon in Ansan for my entire life, I never encountered news about the city until I saw the word "Ansan" on YTN
news.
When the students of Danwon High School went missing under the cold blue water, I was missing as well. As if the whole world paused, I couldn't think of anything at that moment. The false report that the students were
"rescued" soon corrected with words like "missing" and "death," Jae Hwan Lim, who graduated his highschool a year ago and stepped into young adulthood, lost his biggest part of his life since the encounter of the Sewol
incident.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은 가족과 친구들인데 단원고 친구들은 보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나와 같이 청년의 삶을 살았을 단원고 친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직도 문득문득 상상한다. 수년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세월호가 떠올랐지만 지금도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은 되지 않은 채 똑딱똑딱 시간이 흐르고 있다. 견디기 힘든 순간 나의 뒤통수에서 뛸 수 없는 말 위에 얇디얇은
존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거울 속 영웅처럼 비친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듯하다. 형체는 있지만 밝아지지 않는 전구처럼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 뿐이다. 아무것도 못 하게 땅속에 나를 가두고 손과 발을 묶어 놓은 듯. 그 답답함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다니 믿기지 않는다.
유가족들과 광화문에서 피케팅을 하고 서명운동을 해보아도,
하늘공원 친구들에게 인사하러 가보아도,
매주 해외동포 온라인 피케팅에 참여해 보아도,
노란 달력 속 친구들의 밝은 얼굴을 매일 보아도,
한 번도 보지 못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보고 싶은 그들에 대한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간다.
Thinking about how much I miss my families and friends back in Korea and my current adulthood, I often wonder how much the Danwon victims miss their families and friends and what kind of young adulthood they would
have
lived. The ferry that has been under the water arouse. But the time's ticking while the truths of Sewol continue to be hidden, and perpetrators are not punished. A thin insincere being is on a horse that cannot run and seem
to be enjoying itself reflected in the mirror. Like the lightbulb that only has its shape and never gets bright, it's all invisible words and broken promises. I cannot believe that the feeling of being locked under the
ground continues till now.
Even if I stand on Gwanghwamun Square for picketings with the victims' parents,
even if I visit the victims in their cemetery in Ansan,
even if I participate in online gatherings with supporters abroad,
even if I see the bright smiley faces of the victims in the yellow Sewol calendar,
my mind of longing grows more and more for the friends who I never met before.
나의 트라우마는 지속될 예정이다. 사과한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 그와 달리 유가족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겠다 하곤 아직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그들이 땅 속에 나를 가둔 채 내 가슴 한 구석을 깊게, 더욱 깊게 파낸다. 그는 BTS와 대한민국 '청년의 날'을 축하했지만 나는 세월호 친구들과 함께 청년이 되지 못해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머리 위 닻을 내린 세월호의 청사진.
2014년 4월 16일 그리고 변함없는 지금, 세월호를 해결하지 않은 원망으로 나의 청년기가 물들여질 예정이다.
My trauma will continue. One cried for an apology, and the other promised to be the fellow of the victims yet they still haven't done any. They lock me down under the ground and drills a corner of my heart more and
more. He
celebrated the Korean "Day of Young Adults," but I couldn't be happy as the Sewol victims couldn't be young adults with me. The Sewol Ferry blueprint has dropped its anchor on my head.
April 16th, 2014, and now with no changes; my young adulthood will be dyed with resentment due to the unresolved Sewol.